영원할 것 같았던 친구와 멀어지거나,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하여 관계가 끝날 때 우리는 깊은 상실감을 느낍니다. 때로는 "우리는 여기까지인가 보다"라며 운명론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라며 자책의 늪에 빠지기도 합니다.
불교에서는 세상 모든 일이 홀로 일어나는 법이 없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바로 연기법(緣起法)이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연(因緣)의 진짜 의미입니다. 오늘은 인연법을 통해 인간관계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지혜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인(因)과 연(緣)이 만나 결과가 만들어집니다
인연이라는 단어는 사실 인(因)과 연(緣)이라는 두 가지 요소의 결합입니다. 인은 직접적인 원인을 말하고, 연은 그 원인이 결과를 맺도록 돕는 외부적인 조건을 말합니다.
씨앗(인)이 있어도 햇빛과 물, 흙(연)이라는 조건이 맞아야 꽃이 피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의 마음(인)이 있어도 시간, 장소, 상황, 주변 환경(연)이 맞아야 관계가 유지됩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멀어졌다면, 그것은 두 사람 중 누군가가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관계를 지탱하던 환경적인 조건(연)이 다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2. 관계의 유통기한을 인정하는 지혜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제행무상의 진리는 인간관계에도 적용됩니다. 사람의 마음도 변하고, 그 사람이 처한 상황도 변합니다. 어제는 둘도 없는 단짝이었지만, 오늘은 서로의 관심사가 달라지고 가치관이 변해 대화가 겉돌 수 있습니다.
이를 불교에서는 인연이 다했다고 표현합니다. 꽃이 지는 것이 꽃의 잘못이 아니듯,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은 것도 누구의 잘못이 아닙니다. 단지 그 관계가 피어날 수 있었던 특정한 시공간적 조건이 소멸했을 뿐입니다. 관계에도 유통기한이 있음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상대를 원망하거나 스스로를 비난하는 감정의 소모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3. 회자정리(會者定離), 잘 헤어지는 법
불교의 오랜 가르침 중 회자정리는 만난 자는 반드시 헤어지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헤어짐을 실패나 비극으로 보지 않고, 만남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관계를 잘 마무리하고 싶다면 다음의 두 가지 마음가짐을 가져보십시오.
첫째, 고마움만 남기고 나머지는 비우는 것입니다.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 동안 내가 얻은 배움과 즐거움에 대해서만 감사하십시오. 인연이 다해 떠나가는 뒷모습에 서운함을 얹기보다, "그동안 내 삶에 머물며 힘이 되어주어 고마웠다"는 마음으로 배웅하는 것이 나를 위한 진정한 배려입니다.
둘째, 오는 인연 막지 말고 가는 인연 잡지 않는 것입니다. 억지로 관계를 붙잡으려 애쓰는 것은 이미 시들어버린 꽃에 조화를 매다는 것과 같습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인연의 흐름을 받아들일 때, 비워진 그 자리에 또 다른 새로운 인연이 찾아올 공간이 생깁니다.
4. 마치며: 모든 만남은 나를 성장시키는 수행입니다
인간관계는 그 자체로 커다란 수행의 장입니다. 어떤 인연은 나에게 기쁨을 주어 사랑을 배우게 하고, 어떤 인연은 나에게 상처를 주어 인내와 용서를 배우게 합니다.
지금 누군가와의 이별로 마음이 아프다면, 그 인연이 당신의 삶에 어떤 씨앗을 남기고 떠났는지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유통기한이 지난 관계를 억지로 붙들고 괴로워하기보다, 그 인연을 통해 한 뼘 더 성장한 당신 자신을 안아주시기 바랍니다. 인연법을 이해하는 순간, 당신의 인간관계는 상처가 아닌 지혜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